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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일 교과서 일부만 시정

    【동경=최철주특파원】한일간 크게 문제됐던 일본의 교과서 왜곡내용이 일본문부성의 지시에 따라 「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」가 최종 수정작업을 끝내 『신편일본사』로 출판됐으나 지엽적인 부

    중앙일보

    1986.07.08 00:00

  •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

    일본문부성이 황국사관을 반영하는 복고 조 역사교과서를 승인한 것은 일본을 위해서나 한-중 등 아시아 나라들을 위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.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뒤에

    중앙일보

    1986.06.09 00:00

  • 일, 교과서 시정약속 묵살

    【동경=최철주 특파원】최근 일본 문부성의 심의를 통과, 인쇄중인 『고교 일본사』는 일 정부가 2년 전에 시정을 약속했던 대 한국관계 역사기술이 거의 지켜지지 않거나 아예 언급조차

    중앙일보

    1986.06.05 00:00

  • 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(169)조용만|창시개명|황민화 일환…불응하면 배급표 뺏어

    앞에서 나는 창씨문제를 일종의 희극이라고 하였는데, 이것은 농담이고 사실은 큰 문제였다. 우리네는 성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와 성을 간다는 것을 목숨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.

    중앙일보

    1985.02.23 00:00

  •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(168)-민족말살정책

    남총독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해서 1937년 9월 광주의 숭일·수피아학교, 목포의 정명·영흥학교를 폐교시키고 이어 순천의 매산, 담양의 광덕학교를 폐교시키고 교장인 선교사를 추방하였

    중앙일보

    1985.02.22 00:00

  • 남기고싶은이야기들|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(163) 조 용 만|암흑기의 문화계

    이상으로 1920연대 후반으로부터 시작해 1930연대의후반까지에 이르는 우리나라 문화계의 움직임을 대략 훑어보아온 셈인데, 1936년8월 남취낭이 조선총독으로 부임해온 뒤부터는 국

    중앙일보

    1985.02.12 00:00

  • 일황의 사과발언

    「히로히또」일황은 『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』라는 표현으로 일본의 한반도지배 통치에 대한 반성

    중앙일보

    1984.09.07 00:00

  • 문화교류위 안 두기로

    【동경∥신성순특파원】전두환 대통령의 방일 때 일본 측이 가장 큰 기대를 걸고있는 한일 문화교류 위원회설치 구상을 한국 측이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거부, 일본측도 이를 단념했다고 아사

    중앙일보

    1984.08.25 00:00

  • 일 「교과서왜곡」 기본자세 그대로

    82년의 이른바 교과서파동을 계기로 일본정부가 약속했던 왜곡교과서 시정조치의 내용이 일본출판노조의 「검정실태조사결과」라는 형태로 그 일부가 드러났다. 당시 문제가 됐던 왜곡부분에

    중앙일보

    1984.06.19 00:00

  • 일, 교과서 검정기준 다시 강화

    【동경=신성순 특파원】일본출판노조연합은 2일 일본문부성이 지난82년 한국·중공 등과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던 교과서 파동이후 한동안 유연한 자세를 취해왔던 교과서검정기준을 또다시 강

    중앙일보

    1984.02.03 00:00

  • 일 교과서 한국관계 7항 시정|우리정부에 공식통보

    정부는 30일 그동안 말썽이 됐던 일본 중·고교역사교과서에 왜곡기술된 「일제의 한국친략」 등 한국관계부분 7개항을 시정했다는 통보를 일본정부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. 일본정부가 통보

    중앙일보

    1983.07.01 00:00

  • 일의 교과서 시정

    일본 문부성이 역사교과서의 왜곡된 사실 7가지를 시정하였다는 발표를 듣고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. 그것은 지금까지 간간이 들려오던 일본의 시정약속과는 너무나

    중앙일보

    1983.07.01 00:00

  • "창씨개명·일어강요 등 수록"|일 문부성서 시정을 거부

    【동경=신성순특파원】일목문부성은 작년11윌의 역사교과서 검정기준일부 개정이래「침략」등의 용어는 용인하고 있으나 일본의 역사적인 침략냄새를 지우기 위해 여전히 종래와 같은 엄격한 자

    중앙일보

    1983.04.01 00:00

  • 왜곡사실 19개 항목|즉각 시정요구

    정부는 일본교과서 왜곡에 대한 구체적인 시정 요구책을 금명간 확정, 늦어도 내주초까지는 외교경로를 통해 일본정부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. 정부 한 소식통은 17일『당초 시정요구책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9.17 00:00

  • 맹목적인 애국

    평생 때묻지 않은 생활로 일관하신 은사께서 어쩌다 잠시 공직용 맡으셨다가 퇴임하시며 『아무리 불행하고 가난해도 내 뼈를 묻고 자손들이 자랄 곳은 결국 이땅뿐이니 사랑하지 않을수 없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9.11 00:00

  • -부곡 될 수 없는 일제학정의 미상-전 조선 총독부 고간 입장에서-팔목신웅

    『「3·1독립운동」은 당시 조선총독부의 공식호칭이 「3·1독립소요사건」혹은 「3·1만세사건」이 었읍니다. 그것을 지금의 교과서에「폭동」이라고 썼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.』 해방전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8.20 00:00

  • 또 광복절을 맞으며...

    나의 일제시대의 이름은 홍전중 이었다. 창씨개명을 했던 것이다. 발음하기를 「히로다· 시게루」. 국민학교 몇학년때부터 였는지도 기억할 수 없지만 중학진학을 앞둔 전해었던 것같다.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8.14 00:00

  • 창씨개명-권오돈 옹

    > 『창씨를 비방했다고 종로서에 붙들려가서 20일이나 문초를 받았지. 매를 때리고 온갖 협박·공갈로 창씨를 하도록 윽박질렀지만 끝까지 거절했더니 엉뚱하게 횡령죄로 얽어넣어 열달 옥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8.07 00:00

  • 국사편찬위가 분석한 일교과서 왜곡내용

    ◇한일세정서 ▲1904(명치37)년 2월 일한의정서를 체결하고 한국의 안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, 그것을 위하여 군략상 필요한 토지를 수용하는 것 등의 권한을 한국으로 하여금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8.06 00:00

  • 피해자의 상처를 다시 짓누르다니…|왜곡 일 교과서…그 배경과 대응책

   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가 일제의 대한침략과 지배서 미화·왜곡시키고 일본각료들이 이를 옹호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해댐으로써 은 국민의 분노는 물론 국제적인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. 이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7.28 00:00

  • 「3·1운동」을 「폭동」으로|일 새 교과서에 나타난 사실부정곡사례

    일본의 교과서내용이 최근 수년간 과거 군국주의와 식민지주의를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있어 일본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물의를 빚고있다. 지나간 일에 대한 평가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7.23 00:00

  • 강요와 장려

    일본인의 대한관이 올바르지 않고 지나치게 비뚤어져있다는 점에 대해서 한국인치고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없다. 한반도의 역사를 통해서 일본은 우리의 이웃이었고 그것도 별로 달갑지

    중앙일보

    1981.09.25 00:00

  • (35)「인간문화재」김영복옹이 「지승공예」의 명맥을 이어|홍성군 광천읍 「종이그릇마을」

    충남 홍성군 광천읍 신진리는 우리나라전통 그릇 가운데 가장 운치가 있는 종이그릇을 만드는 유일한 고을이다. 바둑통·담배쌈지·붓통·벼루함에서 화병·함지박·과자그릇·향로에 이르기까지

    중앙일보

    1981.04.10 00:00

  • 월탄

    월탄은 중앙일보창간호부터 『아름다운 이 조국을』이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장편소설을 연재했었다. 『우리들은 어째 이리 가난해야만 하는가. 어째 이리 뒤숭숭하기만 한가. 나 자신을 반성

    중앙일보

    1981.01.14 00:00